AI에 대해 이야기 할때 처음에는 기술 이야기로시작한다. 어떤 모델이 좋아졌는지, 어떤 회사가 얼마를 투자했는지, 어떤 직무가 먼저 자동화될지. 다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질문이 바뀐다.
내가 지금 쌓는 능력은 얼마나 오래 가치 있을까.
평범하게 커리어를 쌓는다는 말은 아직 유효할까.
일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일에서 얻던 의미는 그대로 남을까.
얼마 전 Rawson을 상하이에서 만났다.
그는 Delphi Ventures에서 AI 리서치와 투자를 하고 있고 그동안에도 전통 금융에서 투자 업무를 맡아 왔다. 그의 글은 AI 투자 보고서처럼만 읽히지 않아서 매력적이다. AI, 중국, 미국, 자본, 노동, 민주주의, 인간의 의미 같은 단어들이 계속 서로 부딪히는 칼럼 처럼 읽힌다.
AI가 정말 바꾸는 것은 무엇일까. 기술 자체일까, 아니면 인간이 사회에서 자신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방식일까.
글쓰기는 생각을 알아내는 일이다
대화는 글쓰기에서 시작됐다.
Rawson은 처음부터 공개적인 이름으로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과거 투자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회사의 브랜드 때문에 온라인에 자유롭게 쓰기 어려웠고, 그래서 Pondering Durian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때 그가 쓰던 것은 동남아시아와 중국의 기술 생태계에 관한 글이었다.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중국에서 시작되어 동남아시아로 옮겨오는지, 무엇이 복사되고 무엇이 달라지는지, 각 지역의 기술 생태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한 생각들이었다.
Anecdote: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나요? 세상에는 똑똑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도 많지만, 자기 생각을 긴 글로 정리해 공개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잖아요. 그 선택은 어디에서 시작됐나요?”
Rawson:
“저는 좋은 글을 늘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창작이라기보다, 동남아시아에서 보던 기술 트렌드에 대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기술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서, 그것이 동남아시아에서는 어떻게 복사되고,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부분을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는지에 대해 썼습니다.
그 글들이 결국 Delphi와 연결해줬습니다. Delphi의 리서치 헤드가 제 글 몇 편을 좋게 봤고, 트위터에서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중국으로 옮길 때는 만다린을 유창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저를 고용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결국 제 글이 Delphi와 연결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제가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내는 방식입니다. 많이 읽고, 똑똑한 사람들과 이야기한 뒤에 앉아서 묻는 거죠.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정말 무엇을 믿고 있나.
처음부터 깔끔한 아웃라인을 잡고 쓰는 편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길게 써봐야 제가 무엇을 믿는지 알게 됩니다. 그다음에야 핵심을 위로 올리고, 구조를 다시 정리합니다.”
Rawson에게 글은 “내가 이 주제에 대해 무엇을 믿고 있나”를 알아내는 도구였다. 먼저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다시 혼자 앉아 문장으로 밀어보는 일. 그 과정을 거쳐야 남의 문장을 빌리지 않고 자기 생각에 가까워진다.
AI처럼 큰 주제를 말할수록 이 과정은 더 필요해진다. “세상이 바뀐다”, “일이 사라진다”, “인간은 더 창의적이어야 한다” 같은 말은 쉽게 나오지만, 너무 빨리 말하면 생각보다 슬로건에 가까워진다.
정답보다 흥미로운 길
Rawson의 커리어도 한 방향으로만 정리되지는 않았다.
그는 애틀랜타에서 자랐고, 첫 직장은 뉴욕의 M&A 업무였다. 스스로도 “은행권의 미니언처럼 주 100시간 일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이후 Temasek에 합류했고,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싱가포르로 갔다. 동남아시아의 성장 투자, 소비자 인터넷, 크립토, 그리고 나중에는 중국과 AI까지 이어졌다.
Anecdote:
“중요한 커리어 결정을 할 때, 이것이 맞는 결정이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아니면 확신은 없지만 더 흥미로운 방향이라는 감각으로 움직였나요?”
Rawson:
“제가 내린 결정들이 항상 ‘맞는 결정’이라는 걸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흥미로운 성장 기회가 될 것이라는 감각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꽤 흥미로운 인생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술 투자를 하다가 동남아시아 기술 투자팀으로 옮긴 것이 재무적으로 가장 최적의 선택이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저에게 돈을 주면서 3년 동안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니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같은 곳에서 창업자들을 만나라고 한다면, 꽤 멋진 이야기잖아요.
중국으로 옮길 때도 비슷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꽤 편해지고 있었고, 삶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모험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돌아보면 후회하지 않습니다. 회사 사이를 옮기기도 했고, 같은 플랫폼 안에서 지역을 바꾸기도 했고,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으로 몇 번 뛰어들었습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재무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는지보다, 그 선택이 자신을 더 넓은 시장과 사람들 속으로 데려가는지가 중요했다.
동남아시아, 중국, 크립토, AI는 서로 다른 주제처럼 보이지만 그의 경로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고, 모르는 시장에 들어가고, 더 많은 접촉면을 만드는 것. 정답이 늦게 보이는 영역에서는 이런 경로가 꽤 강한 학습 방식이 된다.
AI는 기술보다 사회의 문제다
글쓰기와 커리어 이야기를 지나, 나는 AI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로 넘어갔다.
누군가는 AI가 모든 사람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예전의 열 사람만큼 일하고, 회사는 더 적은 인원으로 더 큰 결과를 내고, 세상 전체의 부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같은 말이 불안으로 바뀐다. 회사가 열 명으로 충분하다면, 나머지 아흔 명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물건이 싸지고 삶이 편해진다 해도, 사람이 자기 일을 통해 얻던 자리는 어떻게 되는가.
나 역시 한동안 AI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조급함이 컸다.
소셜미디어에는 매일 새로운 도구와 사례가 올라왔다. 누군가는 혼자서 제품을 만들고, 누군가는 며칠 만에 회사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기존 직무가 몇 년 안에 사라질 것처럼 말했다.
그때 편한 커리어 안에 머무르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표준적인 길이 더 이상 표준적인 생존 전략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Anecdote:
“AI가 앞으로 사회를 어떻게 바꿀 거라고 보나요? 어떤 사람은 AGI와 기본소득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대규모 실업을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풍요의 시대가 온다고 말하잖아요. 당신은 이 변화의 방향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Rawson: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AI라는 큰 흐름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지만, 이것은 매우 반사적인 흐름입니다.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그 흐름에 대한 투자와 발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터넷처럼 빠르게 전 세계로 퍼질 수도 있고, 사회가 밀어내면서 데이터센터를 짓기 어려워지는 식으로 더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왔다고 봅니다.
저는 대체로 낙관적입니다. 제 아이의 삶은 제 삶보다 꽤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다만 자본을 가지고 있거나 생산수단을 가진 나라와 사람들은 더 유리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본의 생산성이 노동의 생산성을 앞지르는 세계에서는, 자본을 가진 쪽이 분명한 이점을 갖게 됩니다.
20년, 30년 뒤에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여가를 갖고, 자본주의 기계 안의 경제적 톱니바퀴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삶 자체에서 더 많은 정체성을 얻는 세계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전환을 잘 관리하려면 매우 좋은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AI는 가장 뛰어난 사람들에게 거의 무한한 레버리지를 줄 것이고, 능력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인센티브 안에서는 매우 불균형한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흐름이 가져올 가능성에 흥분합니다. 많은 것들의 비용이 내려갈 겁니다. 동시에 불평등도 계속 커질 수 있습니다. 사회가 그 충격을 어떻게 다룰지가 중요합니다.”
Rawson은 AI가 삶의 질을 높일 가능성을 분명히 봤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자본과 노동의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핵심은 단순한 낙관이나 비관이 아니었다. 변화는 모두에게 같은 형태로 오지 않는다.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는 레버리지로 오고, 노동을 팔아온 사람에게는 협상력의 약화로 올 수 있다. 같은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풍요이고, 누군가에게는 불안정성이 된다.
일이 줄어들면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할까
만약 AI가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리고, 회사가 예전보다 훨씬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설령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해지고, 물건은 싸지고, 사회 전체는 더 부유해진다고 해도,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될까.
지금 많은 사람에게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다.
직업은 자기소개다. 명함은 위치다. 회사 이름은 사회적 신호다.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이 쓸모 있다는 감각을 얻고, 남들과 비교할 기준을 얻고, 하루를 구성하는 리듬을 얻는다.
그래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는 이상하게 들린다.
Anecdote:
“AI 덕분에 생산성이 크게 오르고, 회사가 예전보다 훨씬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요. 설령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해진다고 해도, 일이 줄어든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목적을 찾게 될까요?”
Rawson:
“그건 수조 달러짜리 질문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목적을 찾는가.
50년 뒤의 세대가 지금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얼마나 많이 일의 지위에서 얻었는지 꽤 디스토피아적으로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이 어떤 경제적 효용을 만들어냈는지가 정체성의 중심이었던 시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비교를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이고, 우리는 지위 게임을 합니다.
다만 경쟁의 성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산업 생산과 더 가까웠던 경쟁에서, 더 인간 중심적인 지위 게임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18세기의 제련공이 유튜버나 팟캐스트 대화를 보면, 그것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미래의 일은 사람이 자신을 충족시키고, 평판을 얻고, 다른 사람에게 유용하다는 감각을 갖는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생계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을 수 있죠.
에너지와 합성 지능의 비용은 크게 내려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부족해지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단순히 IQ 톱니바퀴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비교와 지위 게임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우리는 일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일을 통해 자신을 설명한다. 월요일을 싫어하면서도, 직업이 사라진 삶을 상상하면 불안해진다. 회사 밖에서 나를 설명할 언어가 충분하지 않으면 흔들린다.
AI가 건드리는 것은 월급만이 아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이 있다는 믿음, 내 시간이 사회 안에서 교환되고 있다는 느낌까지 함께 흔든다.
부족해지는 것은 더 인간적인 것
나는 Eugene Wei의 글 「Status as a Service」를 떠올렸다.
그 글의 첫 문장은 인간이 지위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말로 시작한다. 집, 직업, 학교, 회사, 팔로워 수, 좋아요 수. 시대마다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위치를 읽었다.
그렇다면 일이 더 이상 사람의 지위를 가장 잘 설명하지 않는 시대에는 무엇이 남을까.
Anecdote:
“지금은 직업, 회사, 팔로워 수 같은 것들이 사람의 위치를 어느 정도 설명하잖아요. 그런데 일이 더 이상 사회적 지위의 핵심 신호가 아니게 된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통해 서로를 비교하고 연결하게 될까요?”
Rawson:
“이상한 반전 중 하나는, 큰 가족을 갖는 것이 지위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아이와 깊은 사회적 연결을 갖고, 그들을 부양할 수 있는 수단을 갖는 것. 세상은 오랫동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언젠가 그것이 뒤집힐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높은 시간 사용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꽤 아름다운 일입니다.
미래의 일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술이 상품화되고 비용이 크게 내려가면, 다른 영역에 쓸 수 있는 여력이 생깁니다. 그 영역은 더 지위 중심적이거나, 더 럭셔리 중심적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인간적 상호작용이나 프리미엄 인간 서비스 같은 것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더 인간적인 쪽으로 이동하는 거죠.”
우리는 이런 것들을 생산성 바깥에 있는 것으로 취급해왔다. 일을 끝내고 남는 시간에 하는 것. 커리어가 안정된 뒤 챙기는 것. 경제적으로 중요한 일이 먼저 끝난 다음에 돌아보는 것.
하지만 지능과 에너지의 비용이 내려가면, 오히려 사람이 직접 주는 것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누군가의 시간, 취향, 신뢰, 대화, 손이 들어간 서비스. 자동화가 쉬워질수록 이런 것들은 더 잘 보일지도 모른다.
AI 경쟁은 추상적이지 않다
Rawson의 글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시선이었다.
AI를 말할 때 사람들은 자주 모델 이름이나 앱 경험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Rawson은 더 아래를 본다. GPU, 메모리, 반도체 장비,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망, 국가 전략.
AI는 화면 안의 소프트웨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물리적인 경쟁이다.
나는 중국에 대해 묻고 싶었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에게 중국은 늘 복잡한 대상이었다. 가깝지만 멀고, 익숙하지만 잘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 중국에 가보면 작은 편의점이나 길거리의 결제 경험 안에도 기술이 깊게 들어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Anecdote:
“AI 경쟁을 보면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한국 같은 나라들도 각자 준비하고 있잖아요. 모델만의 싸움이 아니라 GPU, 메모리, 데이터센터, 공급망까지 연결된 경쟁처럼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요소가 국가 간 AI 경쟁을 결정한다고 보나요?”
Rawson:
“제게 중국은 가장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은 AI 스택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자급자족에 가까운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현재의 글로벌 질서를 운영하고 있고, 훨씬 더 많은 동맹을 가지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공급망은 한국, 대만,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에 크게 의존합니다. 기본적으로 글로벌합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이 서로 분리되고 전략적 경쟁이 심해지면서, 중국은 ‘우리가 잘릴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AI 스택의 여러 층위에 매우 크게 투자하고 있습니다. 메모리, 칩, EUV 장비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우회할지 같은 문제들이죠.
미국과 동맹국들은 서로 협력할 수 있기 때문에 약간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한쪽에는 중국 생태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거의 나머지 모두가 있는 셈입니다.
그래도 지난 5년 동안 중국이 자체 공급망에 투자하며 이룬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AI 스택의 여러 층위에서 꽤 큰 진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양쪽 모두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크게 투자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인센티브보다 정치적 불이익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더 좋은 모델을 만드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그 모델을 돌릴 전력을 갖고 있는가. 누가 칩을 만들 수 있는가. 누가 메모리를 확보하는가. 누가 장비와 공급망을 통제하는가.
삼성, SK하이닉스, TSMC, NVIDIA, 네덜란드의 장비 회사들. AI는 추상적인 미래 담론처럼 보이지만, 실제 경쟁력은 매우 물리적인 곳에서 결정된다.
지능이 클라우드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일수록, 그 아래의 칩, 전력, 공장, 장비, 동맹은 더 중요해진다.
우리는 더 이상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지 않다
Anecdote:
“AI가 당신이 오래 믿어왔던 생각 중 하나를 깨뜨린 게 있나요? 평생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AI 때문에 더 이상 그렇게 믿기 어려워진 것이요.”
Rawson:
“조금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저는 인간이 독특하게 지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믿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3년 안에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보다 훨씬 더 지적인 GPU 클러스터가 존재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의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지능만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꽤 놀랍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를 잘 풀어야겠죠. 하지만 제게는 그것이 ‘정말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만든 변화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을 지능으로 설명해왔다.
도구를 만들고, 언어를 쓰고, 추론하고, 계획하고, 세계를 모델링할 수 있는 존재. 특히 지식 노동자는 그 믿음 위에서 자신의 가치를 만들었다. 더 잘 읽고, 더 빨리 이해하고, 더 깊이 분석하고, 더 좋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더 많은 선택지를 갖는 세계였다.
AI가 흔드는 것은 바로 그 질서다. 육체노동이 기계화되던 시대에는 몸의 능력이 덜 희소해졌다. 이제는 지적 노동의 일부가 같은 일을 겪고 있다.
Rawson은 Young Macro라는 계정이 말한 “Dionysian descent”라는 개념도 언급했다. 지난 20년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IQ를 가진 사람들이 매우 높은 가치를 받던 시기였고, 그들이 가장 먼저 하게 될 일은 자기 자신을 디지털 지능의 형태로 상품화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개념이 불편한 이유는 명확하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사람이 육체노동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높은 지능으로 설명해온 사람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남는 것은 스스로 움직이는 힘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준비에 관한 것이었다.
이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어떤 특성이 더 중요해지는가. 지능이 더 이상 가장 큰 차별점이 아니라면, 사람은 무엇을 키워야 하는가.
Anecdote:
“그럼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지능 자체가 더 이상 가장 큰 차별점이 아니게 된다면, 어떤 특성이나 태도가 더 중요해질까요?”
Rawson:
“저는 인간에게 여전히 agency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 영역에서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똑똑하고 agency가 높은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더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바뀌고 있죠. 그래서 어떤 주제를 골라 깊게 파고들거나, 여러 분야를 많이 읽는 사람들이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점점 더 평균적인 사람도 자본 배분을 통해 경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0년과는 반대처럼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소수의 자본가들이 있고, 나머지는 그 아래에서 노동을 제공했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기계와 함께 직접 일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층의 사람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거의 AI 연구자라는 일종의 사제 계층에 가까운 사람들이죠.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그에 맞게 투자하려고 할 것입니다.
비관주의자는 똑똑해 보이지만, 지난 100년을 보면 낙관주의자가 대체로 맞았습니다. 미래가 좋아질 것이고, 기술은 계속 가속할 것이라는 낙관적 베팅을 하는 것이 더 쉬운 돈벌이였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가장 호기심이 많고, 미래에 대해 올바르게, 그리고 아마도 낙관적으로 베팅하는 사람들에게 열릴 것이라고 봅니다.
또 다른 길도 있습니다. 생산성 향상 덕분에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내가 늘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쓰는 것 같은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정말 잘한다면, 그것도 점점 더 가치 있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는 영역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좋은 자본 배분자가 되는 것. 다른 하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희소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Rawson이 말한 준비는 두 갈래였다. 하나는 세상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그 믿음에 실제 자본을 배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다른 하나는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적인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
둘 다 결국 스스로 움직이는 힘의 문제다. 정보를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본 미래를 해석하고, 그 안에서 어디에 서야 할지 정하고, 불확실해도 움직여야 한다.
처음의 글쓰기 이야기도 여기로 돌아왔다. 많이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다시 혼자 앉아서 묻는 것. 나는 무엇을 믿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이 대화가 끝난 뒤 내게 남은 질문은 “AI가 얼마나 빨리 발전할까”가 아니었다.
인간은 앞으로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될까.
우리는 오랫동안 쓸모를 통해 자신을 설명했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회사, 더 높은 생산성, 더 빠른 판단, 더 좋은 결과. 그 언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언어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오고 있다.
Rawson의 답에서 계속 돌아온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본이다. 지능과 에너지의 비용이 내려갈수록, 무엇을 믿고 어디에 배치할지의 문제가 커진다.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희소성이다. 관계, 신뢰, 취향, 창작, 대면성처럼 기계가 쉽게 대체하지 못하는 것들.
정답은 아직 없다. Rawson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더 이상 “인간은 가장 똑똑한 존재”라는 오래된 안도감에 기대기는 어려워졌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질문은 조금 더 실용적이었다.
나는 지금 어떤 미래를 보고 있는가. 그 미래를 믿는다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 과정에서 AI 더 잘하는 일과 별개로, 사람에게서만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